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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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시종면

금굴 속 젓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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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여. 옛날 어떤 스님이 지나가다가 봉곡마을 사람들한테 하는 말이“과부가 백 명이 나오면 이 마을을 떠라”했는디, 거가 금 파는 금 굴이 생겨갖고 거그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그 동네에 과부가 갑자기 많이 생겨갖고 망해 부렀다고 하든만.
 거가 김씨들 양반촌 이었는디, 금 판다고 여그 저그서 하도 몰려든께 자손들이 다 객지로 떠나 불고 다 섞어져 부렀어. 금 굴에서 사람이 겁나게 죽었제. 남포 티다가 죽고, 굴 내려가다가 죽고 그란 통에 과부가 많이 생겼어. 거가 그렇게 유명한 금이 나왔는디, 인자 거가 젓 굴이 되아부렀어.
 그라고 우리 아버지 친 고모가 금 굴 밖에서 함박 집을 했어. 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그서 밥을 먹고 다녔는디, 그때는 경상도 충성도 사람들도 어뜨게 많이 와 가지고는 뭔 사람들이 구물구물하니 수백 명씩 굴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고 하든만.
 그때는 금 굴이 한 사오 키로는 들어갔다고 하고, 부모님들이 옛날에는 다 가난한께, 거그 가서 일도 하고 심부름도 하고 그랬는디, 쌈도 자주로 하고 인부들끼리 경상도는 경상도끼리 모태고, 전라도는 전라도끼리 뭉쳐서 쌈도 하고 수백 명씩 모태서 살았다고 그랬어.
 인자 금 굴은 다 없어져 불고 현재는 개인이 그 굴을 사갖고 젓갈 만들고 있는디. 지금도 그 안에 수천 개나 들어 있어. 도람통으로 이빠이 담어져 갖고 인자 젓 굴이 되아부렀제.
 그 굴은 일제 때 팠는디 거그서 굴 파고 일한 사람들은 다 한국사람이었어. 일본 사람들이 감독을 하고, 그때 고모님은 인부들 밥해주는 함바집을 하고, 할아버지하고 우리 아버지는 걱서 심부름하고 그랬는디, 여름에 비가 와갖고 그치고, 해가 비치면 금이 막 빤닥 빤닥 한다고 하드라고.
 그라고 하루 금을 파고 나오면 금이 돌에가 이렇게 많이 묻어 있다고 하든만 그라면 그 돌을 하나씩 숨겨갖고 온다고 했어.
 그때 인부들이 자고 사는 집은 방이 오물오물 하게 많이 있는디, 거그 중천장에다 금 묻은 돌을 숨겨 놨다가 내중에 한 달 밥값으로 한 덩어리씩 갖다 주면 그놈 폴면 몇 달치 돼아분다고 하든만.
(조사자 : 젓갈은 어디에서 오나요)
 쩌그 추자도 같은데 섬에서 큰 트럭으로 도람통으로 이빠이 싣고 오든만. 그래갖고 안에다 짝 진열해놨어 가보면. 그라고 안에 온도가 일 년 내내 안 변하고 한 섭씨 오도 정도 유지하고 있은께 젓갈이 안 변하고 숙성이 잘 되제.
 그전에 젓 굴로 처음에 막 개발했을 때 이렇게 전깃줄로 불을 켜났어. 그라면 끄트머리까지 엎져서 들어가고 그랬는디 중간에 사람이 하나 죽어 갖고 인자 못 들어가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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