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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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금정면

저수지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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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소화 오년생인디, 주민증에는 생일이 늦어. 어릴 적에 일제를 거치고, 젊은 시절에는 인공을 피해 살다가 늦게 군대 갔다가 스물아홉에 제대 했는디, 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하고 같이 다녔어.
 어려운 시절이라 공부도 못하고 배운 게 없어서 군대에서 조금씩 배운 것이 다여. 특별한 재주가 없응께, 이일 저일 하며 살았제. 저수지 맹그는 일도 많이 했지. 여그 저그 찾아다니며 흙도 파고, 바지기로 나르기도 하고, 별 일을 다했어. 여기 우리 마을 저수지는 일제 때 맨들었는디 나도 일했어. 마을에는 함바집도 있었어. 공사인부들이 거그서 먹고 일했지.
(조사자 : 그 때는 어르신이 아직 어릴 때인데 무슨 일을 하셨어?)
 일본 사람들이 참 면밀해. 모든 것을 그냥 하지 않고 철두철미해. 흙을 날라 오면 아무래도 풀이랑 나뭇가지랑 섞일 수 있는디, 애들은 그것을 골라내는 일을 해. 당시 상공가는 일원 이십 전이었는데 하공가는 육십전을 줬어. 그랑께 일 잘 한 사람은 일원 이십전이고 그냥 허드레 일꾼은 그 반을 품삯으로 받았어. 여자들도 같이 울력 했는디, 흙을 이고 나르기도 하고 매댕이를 치기도 했어.
 사람마다 하는 일이 나누어져 있어. 흙 파는 사람, 흙 담는 사람, 바지게 진 사람, 세숫대야로 이고 나르는 사람, 흙 고르는 사람, 매댕이 한 사람 모다 그때그때 정해진 일을 해. 흙을 반듯하게 수평잡고 다지고, 다시 수평잡고 그렇게 착실하게 일했지.
  앞에 거는 일제 때 완성했지. 저그 냉천 저수지는 일본 사람들이 막다가 못 막은 것은 박정희 시절에 막았어. 일대에서 사람들이 일하고 밀가루 많이 타서 먹었지. 밀가루로 맹글어진 저수지야.
 여그 저그 저수지 맹글러 댕기면서 들은 얘긴디, 저수지를 완성하고 산사람을 묻어야 다른 사람이 사고가 없다고 해서 사람을 사서 묻는다고 해. 여그 간송 앞에 마을 방죽에도 사람을 묻었다고 해. 뭐 염렵하지 못한 사람 사다가 묻는다고 하는디, 말만 들었지 보지는 못했어. 쩌기 남송 마을 위에 큰 저수지에도 사람을 넣었단 말이 있고 그래. 아랫마을에서는 저수지를 만들고 그냥 말았더니 새비 잡으러 갔다가 사람이 바로 빠져 죽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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