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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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학산면

독천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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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십여 년간 영암에서 케이블카 설치할라고 고생들 하지라. 그런데 영암에 본래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을 안 사람이 거의 없어라.
(조사자 : 영암에 케이블카가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인데 어디에 있었어요?)
 여기 천 우시장에서 장정산 중턱 팔부능선 정도까지 케이블카가 있었어. 일본 사람들이 만든 것인디, 광부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맨든 것이어. 당시 요기 낭주중학교 위에가 다 함바집이여. 양철지붕으로 된 광산촌이 꽉 찼어. 장쟁이산에서 일한 인부들이 거그서 살고 그랬지. 한 때는 광산에서 채굴했던 인부가 이천 명이 넘었다 해. 인공 때 다 타버렸어.
 그 사람들이 장쟁이 산으로 올라갈 때 우시장 터에서 탔어. 지금도 그 기둥이 있어. 케이블카 밧줄을 묶었던 공구리대 지주인디, 얼마나 튼튼히 했으면 공구리가 아직도 남아 있어. 본래는 십 미터 정도 됐는데, 지금은 반 정도가 위로 보여. 큰 바쿠가 돌아가고 쇠줄을 달아 케이블카가 오르락내리락 했어. 바쿠가 셋이 잡아도 될 듯 큰데 그놈이 돌아. 보지는 않았는데 거그서 사고가 나서 인부 둘이 떨어져 죽은 일이 있다 하더라고.
 여그치 말고 또 있었는디, 장전이산에서 석포까지 가는 케이블카가 또 있었어. 이놈은 사람이 타고 다닌 것이고, 저놈은 돌을 실어 나르던 케이블카였는디, 돌을 싣고 갈 때는 벼락 쳐. 신정 자리가면 케이블카 다닌 공구리대 지주가 지금도 있어. 신덕 수리봉에서 내려다보면, 기둥을 세워 줄이 안 쳐지게 했어. 돌바구리는 완전히 강철이여. 거그다 돌을 한나 싣고 케이블을 따라 석포까지 내려갔어. 길이가 한 십리는 족히 되지. 그놈들은 어떻게 그런 것을 만들었는지 몰라. 석포 앞바다까지 돌을 쉽게 옮길라고 그라고 긴 케이블카를 놨당께. 거리가 진께 줄이 쳐질 것 아니야. 그래서 도중 도중에 학구대를 세워서 받쳤지. 학구대 관리하는 곳이 주간이여. 수리봉과 웃마을이 너무 멀어서 잔등마다 기둥이 있었어. 광산 뒤에 두 개 있었고, 신덕 수리봉에 있었고, 움말뒤에도 있었고, 지하 등재에도 있었고, 은곡에도 서너 개 있고, 마지막으로 석포까지 갔어. 철기둥이 서 있는 데를 학구대라 했는디, 전부해서 열 개가 넘은 것으로 기억 해.
  담는 철 바구리를 한끼라고 했는데, 거그다 을 담아서 나르기도 하고, 도시락을 넣어 보내기도 했어. 천 함바집에서 도시락을 해서, 여그 우시장에서 사람이 타는 케이블카로 장쟁이산으로 올라가고, 거그서 바구리에다 밴또를 실어서 보내. 전부 번호가 써 있어. 그라고 학구대 사람에게 유선통신으로 연락해. 그라믄 학구대 지키던 사람이 자기 밴또를 찾아서 먹고 그랬어.
 석포에서는 큰 배가 와서 일본으로 돌을 싣고 갔어. 꽤 큰 배였는데 한 삼십 톤 정도 된 것 같아.
(조사자 : 그 돌로 무엇을 만들었을까요?)
 잘은 몰것는디 전구 만드는데 썼다고 해. 명반석이라 한 것 같아.
 해방 후에 케이블카는 멈추었어. 쓸 일이 없은께, 그 쇠덩어리 뜯어다 부자된 사람도 생겼다고 했어. 케이블 속에는 여러 가닥의 강철선이 무지하게 퉁거 갖고, 그것을 잘라다가 갈쿠 맨들어서 천장에 판 사람들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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