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의 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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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의 금석문 영암읍

함양박씨 열행기적비

주  소
영암읍 용흥리389
건립연대
저옹집소 맹추 중순 (무진 1868년 7월 중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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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 (孺人) 함양박씨 열행기적비
비석은 박씨 부인을 위하여 세운 것으로 낭주(朗州)
초곡향(草谷鄕)에 세웠으니,
대개 그 의지가 정렬(貞烈)에 기반한 것이다.
부인은 나면서부터 단정(端正)하고
엄숙하여 숙녀(淑女)라는 칭송을 받았다.
나이 18세가 되었을 때 정석렬(鄭錫烈)
공의 가문에 시집가서 부인의 도를 다하였다.
공(公)의 질병이 잠시 잦아들어
그기미를 구별할 때가 되면 부인은
반드시 힘을 다하여 살폈고, 그 힘으로 할 수 없을
때는 울며 기도하여 남다른 데가 있어서,
겨울 버드나무에서 부들풀이 무성하게
나기도 하였으니,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았음을 알 수 있다.
5~6년이 지나도록 병이 더욱 심해지자
부인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약으로 올렸고,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약으로 올렸으니,
보는 사람들이 경탄하며 위로하였는데,
부인은울면서 말했다.
“살아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느니,
이 몸이 죽어서 남편의몸을 대신하는 것이 낫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의 질병이 점점 나아졌으나,
부인은 피로가 지나치게 쌓여 낫지 못하고,
불행히도 병을 얻었는데 오직 남편을 걱정하며
“만약 남편께서 어느새 평상시처럼 회복하신 것을
본다면 나는 비록 죽더라도 달게 누울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간신히 열흘 남짓을 살다 부인은 끝내 세상을 떴다.
아아! 정렬(貞烈)이어!
태황제(太皇帝) 무인년(戊寅年) 향리의 선비들이
그 일을 진술하여 군(郡)과 도(道)를 거쳐 어사(御使)[直指使]에게
알렸으나, 끝내 황제께 도달하지 못하였다.
지금을 말하자면 어두운 길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
같아서 삼강(三綱)이 물에 잠기듯 사라졌으나,
부인과 같은 사람은 한 시절에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
공의(公議)가 어찌 되겠는가! 여러 선비들이 한 목소리로
힘을 모아 돌을 캐어 표창하기로 하고
현손(玄孫) 인채(仁采)를 시켜 나에게 말을 청하므로
나는 보잘것없는 문장으로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천성에 근거한 일은 차마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으니,
간략히 얼개만 적어서 그 아름다움을 표창하여
그 덕을 아는 이들께 보이려 한다.
부인의 가계는 함양을 본관으로 하는 집안에서 나왔으니,
성균관 전적을 지낸 박성건(朴成乾) 공의 후예로,
조상은 약속을 지키는 것을 말하면서 동눌(東訥)이라고 하였다.
정조(正祖) 경신년(庚申年)에 태어나 36년을 살다 세상을 떠났으니,
헌종(憲宗) 을미년(乙未年) 10월 27일의 일이다.
정공(鄭公)은 하동(河東)을 본관으로 하는 큰 씨족의 후손으로
효자(孝子) 초당(艸堂) 정홍제(鄭弘濟)공의 손자로
세상에 의를 행하는 가문의 후손이다.
무진[著雍執徐] 7월 중순, 안동(安東) 김영한(金甯漢) 기술
완산 최병두 씀
지역 명사(名士)
신종봉 최창홍 김영환 현기은 문추 최기성 정홍순 이회정
박용상 류춘연 최병만 김병국 조민환 이기우 최규양 이계선
정순종 김상기 세움

孺人咸陽朴氏烈行紀蹟碑(유인함양박씨열행기적비)
碑爲朴孺人樹者屹乎朗州草谷之鄕盖志基烈也
(비위박유인수자흘호낭주초곡지향개지기렬야)
孺人生而端莊有淑女稱年十八適鄭公錫烈之門
(유인생이단장유숙녀칭년십팔적정공석렬지문)
盡其婦道及公之疾息味之別者孺人必碣力而致
(진기부도급공지질식미지별자유인필갈력이치)
之非其力之所可致者則泣而禱有雞鼈之異且於
(지비기력지소가치자칙읍이도유계별지이차어)
冬月柳耳年茸其誠之格天可知矣經五六稔疾日
(동월류이년용기성지격천가지의경오륙임질일)
益篤則孺人局所指而注血到股而調餌觀者驚嘆
(익독칙유인국소지이주혈도고이조이관자경탄)
而慰之孺人泣而言曰與其生而覩天之崩也寧滅
(이위지유인읍이언왈여기생이도천지붕야녕멸)
此軀以代夫子之身居無何公疾則稍平而孺人勞
(차구이대부자지신거무하공질칙초평이유인로)
攰成崇不可醫矣而不優其病惟夫子是憂曰若見夫
(攰성숭불가의의이불우기병유부자시우왈약견부)
子霍然而復其常吾雖苑如得甘寢纔兼旬而孺人
(자곽연이복기상오수원여득감침재겸순이유인)
竟歾嗚呼烈哉太皇帝戊寅鄕章甫陳其事子郡于
(경몰오호렬재태황제무인향장보진기사자군우)
道于直指使而竟未徹九重命也傾今風雨昏衢三
(도우직지사이경미철구중명야경금풍우혼구삼)
綱淪焉而如孺人者不暴白於一世其於公議何如哉
(강륜언이여유인자불폭백어일세기어공의하여재)
諸章甫齊聲聚力將伐石以表之使玄孫仁采徵不倿
(제장보제성취력장벌석이표지사현손인채징불첩)
語不倿朽筆無足輕重然彝性所在不忍終嘿略述梗
(어불첩후필무족경중연이성소재불인종묵략술경)
槩用彰厥懿使知德者有放焉孺人系出咸陽成均典
(개용창궐의사지덕자유방언유인계출함양성균전)
籍諱成乾之後祖曰守約者曰東訥以正祖庚申生生
(적휘성건지후조왈수약자왈동눌이정조경신생생)
三十六年而卒實憲宗乙未十月二十有七日也鄭公
(삼십육년이졸실헌종을미십월이십유칠일야정공)
河東大姓而孝子艸堂公諱弘濟之孫以行義世其家云
(하동대성이효자초당공휘홍제지손이행의세기가운)
著雍執徐孟秋中旬安東金甯漢 記
(저옹집서맹추중순안동김녕한 기)
完山崔秉斗 書(완산최병斗 서)
鄕名士(향명사)
愼宗鳳 崔昌洪 金永煥 玄基殷 文錘 崔基性 鄭洪淳 李會貞
(신종봉 최창홍 김영환 현기은 문추 최기성 정홍순 이회정)
朴瑢相 柳春淵 崔秉晩 金炳國 曺玟煥 李基雨 崔圭陽 李啓先
(박용상 류춘연 최병만 김병국 조민환 이기우 최규양 이계선)
鄭淳宗 金相淇 竪(정순종 김상기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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