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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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군서면

구호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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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설에 의하면 우리 동네가 거미 모양이어서‘검을 검’자,‘거미 주’자를 써서 검주리라고 했어. 천구백육십 년대 학파 들녘이 생김시로 동네가 되었제. 모정에서 이구로 분구 되었제. 그 당시 구호 주택이 많았어. 육십삼 세대나 되었어. 한 집에 두 세대가 꼭 살았어.
(조사자: 구호주택은 어떤 것입니까?)
 구호주택이라고 말집처럼 생겼는디, 둘로 나눠 한 호당 두 집씩 산 것이제. 연립주택이나 마찬가지제. 이 구호주택은 미국이 원조해서 지어진 것이어. 간척지 생겼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거고 집이 많이 필요해서 그런 주택이 생긴 것이지. 미국 무슨 단체에서 지원해 줬다고 해. 학파 간척지 초창기에는 천수답이어서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면 농사를 짓고 그랬제. 모를 심어놓으면 소금기 때문에 해독이 심했어.
(조사자: 비가 안 오면 어떻게 물을 댔어요?)
 간척지 중간 중간에 개용이 있잖아? 그 개용을 막아 보를 만들어서 물을 품었제. 두레로 품었는데 네 명이 협동해서 일을 했지. 또 염전에서 사용하는 수차를 이용하기도 했어. 발로 밟아서 물을 품는 장치지. 그 당시에는 학파농장이 완공되었어도 수리 시설이 엉망이어서 비가 백 미리미터정도 와버리면 완전 홍수가 났어.
 벼가 좋게 잘 되다가도 물이 쪄서 배래 부렀어. 일이 이렇다 보니까 육십삼 세대에 달하던 구호주택 주민들이 대부분 서울로 어디로 이사 가부렀제. 그때 강진, 장흥 등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거든.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 짓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제. 요새는 수리시설이 좋아서 농사 짓기 좋제. 그래서 지금은 본토 사람들만 남아서 살고 있제. 구호주택은 모두 철거되고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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