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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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시종면

구두쇠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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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리 마을은 그랑께 옛날에는 샘골하고 매화촌 그 중간에 있었는디, 인자는 흔적만 있고 없어져 부렀어. 그 때는 한 오십 가우 되었다고 한께 작은 마을이었제.
 들은 이야기라 언제인가는 모르겄는디, 무지하게 춘 날, 그랑께 겨울이었것제. 연주리 마을에 한 스님이 이 마을 부잣집에 찾아가서 시주를 부탁 했는디, 그때는 중들이 동냥 하러 많이 다녔어, 그란디 부잣집 주인은 그 추운 날 시주는 안 주고 찬물 한 바가지를 찌클고 쫓아내 부렀어.
(조사자 : 이 이야기를 어느 분한테 들었습니까?)
 이런 이야기들은 남한테 들은 것이 아니고 전부 우리 아버지한테 들었제. 비 온 날 집에 가만히 있으면, 쉬는 날 있으면 아버지가 인자 이야기를 다 해줘. 그라고 데리고 댕기면서 묘 자리에 대해서도 얘기 해주고 그랬어.
(조사자 : 스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님은 안 그래도 추울 것인디, 괘씸해 갖고 속으로‘느그들 인자 한번 보자’하고 갔어. 그 다음 해에 스님이 마을에 다시 와서 마을을 몇 바퀴나 돌면서 살펴본께, 마을 앞에 우물이 있는디 우물이 진짜 좋아서 마을 사람들이 무지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알았어.
 다음날 스님은 변복을 하고 마을에 와서 서성거리면서 마을 사람들 들으라고“마을은 참 좋은데 큰 인물이 날 터인데 저 우물 때문에 문제다”하면서 혀를 차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몇 번이고 그라고 있응께, 그 말을 듣고 찬물 찌끄러분 부잣집 사람이 마을 사람들하고 스님을 집으로 모시고 와서 술에다 고기에다 음식을 대접함서 스님한테“우리 마을에 큰 인물이 날라믄 어쯔게 하면 쓰것냐”고 물어본께, 스님은“마을 앞에 있는 우물을 막아 불고, 딴데다가 샘을 파면 부자도 되고 큰 인물도 난다”하고 가버렸어.
 스님이 간 후, 마을 사람들은 바로 그 우물을 막아 불고, 다른 데다가 샘을 파고 그 샘물을 먹었는디,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이 하나 죽고, 둘 죽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고, 몇 년 안 있다가 마을이 패가망신 되었어.
(조사자 : 연주리 마을 터와 샘은 어떻게 변했나요?)
 들은 말로는 남은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는 사람만 남고 차비라도 쪼깐 있는 사람들은 다 객지로 떠불고 흩어져 부렀는디, 지금 후손들은 잘 산다고들 해.
 그라고 그때 마을 앞길은 지금은 농로로 포장 되어있고, 샘은 농로 아래쪽에 있었는디, 경지정리 하면서 논으로 되고, 마을 터도 반반한대는 논으로 되고, 그 위에는 밭으로 벌어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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